하늘뜻펴기 / 주일예배
“연리지 평화를 위하여” 20241208 : 대림절둘째주일 / 인권주일
도토리키재기 ・ 2024. 12. 5.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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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교회 주일예배 20241208 :
대림절둘째주일 / 인권주일
- 오늘은 통일염원 80년 12월 8일입니다.
- 하나님과 예수님과 거룩한 영의 임재를 기원하면서 예배를 시작합니다.
▶ 전주 - 성가대
▶ 예배의 부름 : (시편 27편 중에서)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부를 때에, 들어 주십시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응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나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이 세상에 머무는 내 한 생애에, 내가 주님의 은덕을 입을 것을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너는 주님을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려라.
입례송 : “오소서 오소서 평화의 임금 우리가 한 몸 이루게 하소서”(정의, 생명)
평화의 인사 : 함께 예배드리는 분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눕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빕니다!” “아유보완!” “카무스타!”
찬송 : “나 맡은 본분은”(찬송가 595장)
오늘의 시편 : “김치찌개 평화론” - 곽재구
김치찌개 하나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 하루의 피곤과 침침한 불빛을 넘어서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실한 비게 한 점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 주며
야근 준비는 다 되었니 어머니가 묻고
아버지가 고추잎을 닮은 딸 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지 그렇게 애기할 때
이 따뜻하고 푹신한 서정의 힘 앞에서
어둠은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흔들린다
이 소박한 한국의 저녁 시간이 우리는 좋다
거기에는 부패와 좌절과 거짓 화해와 광란하는 십자가와
덥석몰이를 당한 이웃의 신음이 없다
38선도 DMZ도 사령관도 친일파도 염병헐,
시래기 한 가닥만 못한 이데올로기의 끝없는 포성도 없다
식탁 위에 시든 김치 고추무릅 동치미 대접 하나
식구들은 눈과 가슴으로 오래 이야기하고
그러한 밤 십자가에 매달린 한 유대 사내의 웃는 얼굴이
점점 커지면서 끝내는 식구들의 웃는 얼굴과 겹쳐졌다.
▶ 기도 : 김명호 집사
▶ 주의기도 : “하늘에 계신 아버지”(찬양집 292장)
▶ 연보 :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찬양집 7장) - 연보위원 박인희 집사
▶ 연보감사기도 :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인간의 현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우리 모두의 미래입니다. 해고가 사람을 얼마만큼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 알 수 있게 해준 절망의 보고서입니다. 단절된 관계가 죽음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자본주의라는 구조 자체가 사람을 어떻게 쓰다만 폐기물로 만드는지 보여준 죽음의 습자지입니다. 또한 그 죽음들에 대한 무감각이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공포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절망과 죽음과 공포를 뛰어넘는 희망을 품는 사람들! 미련하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사람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향한 믿음의 궁극적인 내용인 사랑과 진실, 정의와 평화를 선택하고, 그 가치를 위해 행동하게 하소서. 하나님! 함께해 주십시오. 용기를 주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과 연대로 바꿔온 인권의 외침과 역사를 돌아보면서, 우리 사회와 우리 삶에서, 지구촌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에서, '차이'가 아닌 '차별'이, '공존'이 아닌 '배제'가 작동하고 있는 곳의 불평등한 관계를 바꾸어 나가게 하소서. 인권감수성과 인권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면서, 나의 인간 존엄성을 확인하고, 존엄한 삶을 소망하며, 함께 행복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세상을 위해서 일하게 하소서.
오늘 우리의 삶과 재물, 시간과 정성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눕니다. 나누는 손길을 기억하시고 하늘의 복을 내려주옵소서. 무등공동체 식구들 모두가 언제나 몸과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모든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게 하옵소서.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일상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기쁨을 맛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양 : 성가대
▶ 하늘말씀읽기 : 로마서 14:1-12; 14:13-15:7
<로마서 14:1-12> 형제자매를 비판하지 말아라
1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3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4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할 수 있으시니,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 5 또 어떤 사람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6 어떤 날을 더 존중히 여기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요,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며,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7 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0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11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입이 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12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4:13-15:7> 형제자매가 걸려 넘어지지 않게 처신하라
13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서로 남을 심판하지 마십시다. 형제자매 앞에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고, 다만 부정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입니다. 15 그대가 음식 문제로 형제자매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것은 이미 사랑을 따라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음식 문제로 그 사람을 망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이 좋다고 여기는 일이 도리어 비방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18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19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화평을 도모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을 씁시다. 20 하나님이 이룩해 놓으신 것을 음식 때문에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이 다 깨끗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먹음으로써 남을 넘어지게 하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해롭습니다. 21 고기를 먹는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그 밖에 무엇이든지, 형제나 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2 그대가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23 의심을 하면서 먹는 사람은 이미 단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에 근거해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근거하지 않는 것은 다 죄입니다.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2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다" 한 것과 같습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이며,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5 인내심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게 하시고,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 응답송 :
“이 말씀 따라 사는 동안 지치지 않게 하시고 이 말씀 따라 사는 동안 주님 나라 이루소서”
▶ 하늘뜻펴기 : “연리지 평화를 위하여” - 이병일 목사
본문은 사도바울이 로마교회 공동체에서 같은 복음을 받아들여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권면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교회 안에 갈등이 있었는데, 바울은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할 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갈등의 주체는 다르지만, 그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 ‘한 몸과 많은 지체’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합니다(롬 12장; 고전 12장; 엡 4장). 하나의 몸에 많은 지체들이 있는데, 그 많은 지체들이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하나의 몸을 온전하게 합니다.
로마서 14-15장에서 바울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서로를 세워주라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믿음에 있어서 연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의견을 분별하지 마시오.”(14:1) “더 이상 서로 남을 심판하지 맙시다. 오히려 차라리 이렇게 판단하시오. 형제 앞에 걸림돌이나 올가미를 놓지 마시오.”(14:13) “우리는 평화를 위한 일과, 서로를 세우는 일을 따라갑시다.”(14:19) “강한 우리는 약한 이들의 약함을 짊어질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좋은 것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각자가 선한 것으로 세우기 위하여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15:1-2) “마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너희를 받아들인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받아들이시오.”(15:7)
이러한 말씀은 오늘날에도 공동체 내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그의 주장을 확실하게 펼치기 위하여 두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하나는 음식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날과 절기를 지키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서로를 무시하거나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어떤 날이 다른 날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거나 모든 날이 똑같다고 판단하지만(갈 4:10-11; 골 2:16-17), 각자가 마음으로 충분히 생각하라고 합니다.
처음교회에서는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헬라계(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저마다의 전통과 문화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그대로 지키려 했기 때문에 갈등의 상황이 일어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역사와 문화와 전통에서 자랐어도 가정환경이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 속에서도 내적 갈등에 휩싸일 때가 있는데,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모인 공동체에서는 당연히 갈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어떠한 생각과 행동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그렇게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하느님께 감사한다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날을 생각하는 이는 주를 위하여 생각하고, 먹지 않는 이도 주를 위하여 먹고, 또한 먹지 않는 이는 주를 위하여 먹지 않고 하느님께 감사드리시오. 우리 중에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이도 없고,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이도 없기 때문입니다. 산다면 주를 위하여 살고, 죽는다면 주를 위하여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14:6-8) 여기에서 “주를 위하여”는 살든지 죽든지 이미 주의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은 주를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는 몸을 위하여 있습니다.”(고전 6:13)
바울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먹고 마시는 일을 하느님 나라와 연결시킵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보다는 그 속에 성령 안에서 실현되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먹고 마시는 일 때문에 분열이 일어난 로마 교회를 향한 바울의 외침입니다. 밥상 친교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것이 성령으로 이뤄지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먹는 것 때문에 동료를 괴롭게 하면, 그는 더 이상 사랑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14:15)
밥을 나누는 행위를 사회적으로 해석하면 정의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밥의 독점과 무기화가 아니라 그 속에 생명을 살리는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다른 사람들과 음식을 나눔으로써 생명을 위하는 살림의 운동입니다. 나의 밥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단순한 물질적인 활동이지만, 남의 밥을 위해 일하는 것은 거룩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내어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함께 먹는 무리들은 함께 먹음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새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는 이렇게 말씀과 밥을 나누는 공동체 곧 주의만찬의 공동체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밥을 나누는 행위는 평화의 나눔입니다. 먹는 문제로 서로 남을 비방하거나 걸림돌이나 장애물이 된다면 사랑이 없으며, 이는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먹는 일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서로를 업신여기거나 정죄하지 않을 때 공동체의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를 위한 일과, 서로를 세우는 일을 따라갑시다.”(14:19) 서로를 부추기고 격려하고 힘이 되어 줌으로써 그리스도의 평화를 공동체 안에서 실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밥을 나누는 일이 기쁨을 더욱 크게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밥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삶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고,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밥을 함께 나누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나눔으로써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고, 기쁨을 더욱 크게 만드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밥을 나누는 행위를 말하는 잔치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신뢰를 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을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을 즐겁게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14:18) “하느님의 일을 음식 때문에 망치지 맙시다.”(14:20)
특정한 날이나 절기를 지키는 일을 포함하여 먹고 마시는 일로 대표되는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은 하느님 나라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령이 인도하시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그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의 목적이며, 먹고 마시는 일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이 먹고 마시는 일처럼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고 마실 때마다 하느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와 기쁨을 생각할 것입니다.
울창한 숲에서 거닐다 보면, 두 나무가 하나로 붙어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붙어 있는 가지를 ‘연리지’(連理枝)라고 하고, 줄기가 붙어있는 나무를 ‘연리목’이라고 합니다. 연리지는 두 나무가 서로 연결되어 결이 서로 통(通)한 것인데, 화목한 부부나 연인, 부모와 자식 사이를 비유하기도 합니다.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랍니다.
《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후한 말의 문인인 채옹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년 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간호를 했습니다. 병세가 악화되자 백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펴드렸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살이를 했습니다. 그 후 채옹의 방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서 결(理)이 이어지고 마침내 한 그루처럼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시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칠월칠일장생전(七月七日長生殿; 7월 7일 장생전에서)
야반무인사어시(夜半無人私語時;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천장지구유시진(天長地久有時盡;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차한면면무절기(此恨綿綿無絶期; 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이 시의 비익조는 날개가 한 쪽 뿐이어서 암컷과 수컷이 한 몸이 되어 서로의 날개가 결합되어야만 날 수 있다는 새입니다. 비익조나 연리지는 둘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뿌리가 다른 각자의 나무줄기나 가지가 껍질이 벗겨지고 터져서 그 자리에 나무의 진액이 흐르고, 그 서로 다른 진액들이 부대끼면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처음에 지름생장의 근원인 부름켜가 조금씩 이어지고, 그 다음은 양분을 공급하는 유세포가 서로 섞이고, 나머지의 보통 세포들이 공동으로 살아가는 공간을 차지하면 두 몸이 한 몸으로 살아가는 연리의 과정이 끝이 납니다. 연리의 과정을 통해 한 몸이 되어버린 두 나무는 양분과 수분을 서로 주고받으며, 한쪽 나무의 뿌리가 잘려도 다른 나무의 양분과 수분을 받아 함께 살아갑니다.
동백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 보통은 같은 종류의 나무들로 된 연리지가 많은데, 전혀 다른 나무가 붙어서 연리지가 된 것도 있습니다. 요즘은 어느 곳을 산책하든지 연리지가 많이 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두 나무가 붙어서 하나가 되지만 각각 가지고 있던 본래의 개성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붉은 꽃을 피웠던 나무는 붉은 꽃을 피우고, 노란 꽃을 피웠던 나무는 노란 꽃을 피웁니다. 서로 물과 양분을 주고받지만 소나무는 소나무로, 참나무는 참나무로 살아갑니다.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들이 연리지나 연리목이 되어서도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서로 다름이 있다면 다름을 이해하고, 같은 점은 북돋우면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때 평화롭게 살 수가 있습니다. 서로에게서 배울 때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때 정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동체를 와해하거나 깨뜨리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길벗들이여,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배운 가르침을 비껴서 분열과 올무를 만드는 이들을 조심하고, 그들을 외면하시오. 이런 이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배를 섬기는 것이며, 듣기 좋은 말과 칭찬으로 순진한 이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6:17-18)
그러나 성령으로, 성령 안에서, 함께 만드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세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 다름은 인정하고,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고,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면서 덕을 쌓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기의 고유한 성격과 재능으로, 강하든지 약하든지 지금 나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돌보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하거나 약하면 더 자라기 위해서 서로에게 배우고 노력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하느님 앞에서 돌아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것이 공동체 안에서 함께 자라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시합니다.
날마다 맞이하는 일상 속에서 평화를 이루며 삽시다. 예수님의 제자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공동체를 와해하거나 깨뜨리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하지만, 연리지의 마음으로 공동체의 평화를 위하여,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기의 고유한 성격과 재능으로, 강하든지 약하든지 지금 나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돌보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애쓰고 노력합시다.
▶ 말씀묵상 :
▶ 소식나눔 :
* 인권주일과 세계인권선언일 (12월 10일; 世界人權宣言日; Human Rights Day)
세계인권선언일은 1948년 12월 10일에 열린 국제 연합 총회에서 세계 인권 선언이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날로, 1950년 12월 4일에 열린 국제 연합 총회에서 매년 12월 10일을 세계 인권 선언일로 기념하는 결의안이 채택된 이후부터 전 세계 각국에서는 이 날을 세계 인권 선언일로 기념하고 있다. '국제인권기념일'이라고도 한다. 세계인권선언은 전문(前文)과 본문 30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으로서 시민적·정치적 자유 및 사회보장·노동권, 공정한 보수를 받을 권리, 노동자의 단결권, 노동시간의 제한과 휴식, 교육에 관한 권리,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등 사회적·경제적 권리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인권선언에 나타난 사람의 권리의 주요내용은 첫째,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신앙 사상 언론 학문의 자유 / 둘째, 사람의 몸에 대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유 / 셋째,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로 되어 있다.
인권이라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권리로써 자유와 평등을 말한다. 인권선언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똑같은 기본권리를 가지게 되며, 누구도 인권을 억누르거나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을 세계에 널리 알린 것이다. 인권평등사상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사상이다. 인권은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인권을 짓밟는 일이라고 하겠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표어의 참뜻을 생각하면서, 나는 남의 인권을 빼앗는 행동은 하지 않았나 반성해 보고, 연말에 불우이웃을 돕는데 따뜻한 정성을 쏟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하겠다.
또한 12월 20일은 인간 연대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 유엔에서 제정한 국제 인간 연대의 날이다.
찬송 : “새로운 만남”(찬양집 434장, 국악찬송 169장)
파송사/축도 :
“평안하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당당하게 마주합시다.”
“한 처음에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모든 사람과 생명을 창조하시어 모두가 자기의 정당한 생명의 권리를 누리며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은혜와 /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됨의 길을 보여주시고, 그 길의 끝에서 온 인류를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기꺼이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연대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따라 살도록 추동하시고, 온 생명이 서로 소통하게 하시는 거룩한 영의 역사가 / 오늘도 생명과 평화와 정의가 이 땅에 이루어짐을 믿으며,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면서 하루하루 서로를 사랑하며 살고 있는 당신의 딸/아들의 삶 속에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다시는 군홧발로 국회에 돌아오지 말라!>
군 장갑차를 막아선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시는 군홧발로 국회에 돌아오지 말라!”
지난밤 어떠한 합법적인 절차와 명분도 없이 선포된 윤석열의 ‘비상계엄령’은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았다. 윤석열은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역전시키기 위해 군을 동원해 민의의 전당 국회를 군홧발로 짓이겼다. 이는 친위 쿠데타고 내란이다.
도둑질당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장갑차와 계엄군을 온몸으로 막아낸 시민들의 분노와 용기로 가까스로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지난밤, 수많은 희생 끝에 세운 민주의 가치가 여전히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계엄이 선포되고 해제되기까지의 짧은 시간, 우리는 숨 쉬듯 당연했던 민주주의의 가치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아슬한 지경에 놓여 있었는지도 경험했다. 마침내 국회 의사봉이 가결을 알리는 순간에도 절박한 우려가 새로운 아침의 현실이 될까 우리는 몸서리치며 두려워했다.
지난 시간 윤석열 일당의 폭정에 맞서 예배당과 거리, 골목과 광장 곳곳에서 퇴보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기도하며 분투해온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한마음 한뜻으로 지난 밤 터져 나왔던 용기의 함성을 이어가려 한다.
우리는 ‘윤석열 탄핵’의 짧은 구호를 진정 몸으로 살아내려 한다. 이것은 단지 한 개인에 대한 호오와 정권 교체의 반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난 2년,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해졌으며 보통의 삶은 빚더미에 올라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재벌과 대기업의 법인세는 인하하며 공공요금은 인상됐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치며 갈등을 조장하더니 어렵게 쌓아 온 평등의 가치는 일순간에 무너졌다. 평화는 실종되고 전쟁의 그림자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윤석열 탄핵은 이 모든 과거와의 단절이며 평등, 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세우는 첫 시작이어야만 한다.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다시 오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대림절기, 그리스도인들은 무너진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소망한다. 소외되고 억눌려 신음하는 목소리 가운데 마침내 터져 나올 아기의 첫울음을 간절히 기다린다. 윤석열 정권 퇴진을 시작으로 평등의 새 세상을 바라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뤄지는 그날까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리에서의 예배를 이어갈 것이다.
돌아오는 토요일(12.7) 오후 한 시, 유신독재정권의 극한 탄압 속에서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위한 작지만 위대한 숨구멍, 목요기도회가 열리던 NCCK 앞마당에서 시국 기도회를 제안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외친다.
하나님의 명령이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내란수괴 윤석열을 지금 당장 체포하라!
2024.12.4.
NCCK 시국회의 · 기독교시국행동 · 윤석열 폭정종식 그리스도인 모임
시대가 어느 때인데 계엄령인가?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보며 이게 진짜인가 싶다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과거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계엄의 내용을 계엄사령관이라는 사람이 발표하는 것을 바라보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윤석열은 위기에 몰린 나머지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인다. 이게 과연 가능하리라 생각한 것인가?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가? 윤석열정권의 교만함과 무지함은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릴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계엄령은 1980년 5월 17일이었고, 그 계엄을 선포한 정권의 말로는 비극이었다는 것을 온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윤석열은 당장 계엄을 취소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
윤석열은 모든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내려 놓으라!
우리는 계엄령의 끝을 보겠다. 우리는 윤석열의 끝을 보겠다. 그때까지 우리의 행진은 계속 될 것이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소서.
2024년 12월 4일 새벽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 시국성명서
하나님이 너의 죄를 묻는다!
"네가 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였어도, 네 평화가 강같이 흐르고, 네 공의가 바다의 파도같이 넘쳤을 것이다.” (이사야서 48:18)
지난밤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마주하였다!
평온한 일상의 고요함을 깬 뜬금없는 계엄령 선포에 우리는 몸서리치며 불안에 떨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로지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헌정질서를 무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았다. 누군가는 과거에 경험했던 아픈 역사를 다시 떠올려야만 했고, 누군가는 역사책에서나 볼만한 시대착오적 폭거를 경험했다. 그리고 우리의 푸릇한 청년들은 계엄반란군이 되었다. 이번 계엄령은 대통령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충동적 발악이었으리라. 역사는 2024년 12월 3일 밤, 그의 죄를 기억할 것이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무너뜨리고 온갖 궤변과 주술이 판치게 한 죄!
역사를 왜곡하고 일제 군국주의 세력과 손잡은 죄!
툭하면 압수수색으로 겁박하면서 어렵게 쌓아온 민주주의 질서를 무너뜨린 죄!
민주국가의 공적 기구들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민생을 내팽개친 죄!
분단의 상처를 헤집으며 전쟁위기로 치닫게 한 죄!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권 남용으로 묵살한 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험에 빠뜨린 죄!
불법 계엄령 선포로 내란을 획책한 죄!
윤석열 대통령은 무능한 아합왕과 간교한 이세벨의 말로를 기억하라.
왕비 이세벨을 따라 우상숭배를 하던 아합왕은 전쟁터에서 죽어 그의 피를 개들이 핥았고, 이세벨은 반란군에 의해 창문에서 던져지고 그 시체는 개들에게 뜯어 먹혔다. (열왕기상22:34-38, 열왕기하 9:33-37)
2024년 12월 4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
총회장 긴급 목회서신
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기도합니다!
악인은 악을 잉태하여 재난과 거짓을 낳는구나. 구덩이를 파고 또 파지만, 제가 만든 구덩이에 제가 빠진다. 남을 해친 재난이 저에게로 돌아가고, 남에게 휘두른 폭력도 제 정수리로 돌아간다. (시편 7:14~16)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절기, 우리는 다시 한번 인간의 어리석음에 탄식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안위와 번영을 책임진 대통령의 오만한 결정으로 온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밤중에 전혀 맞지 않는 상황에 군사 작전하듯 비상계엄을 강행했습니다. 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쉬려던 국민은 눈과 귀를 의심했고, 계엄선포 현실에 경악하고 좌절했습니다.
계엄선포의 목적과 과정 등, 그 어느 곳에도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온 민주적 가치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헌법기관인 국회에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난입하는 것을 보면서 온 국민은 12.12 전두환 군사쿠데타의 악몽을 떠올리며 밤새 불안과 혼란으로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국민은 모여들어 국회를 지켰고 국회는 신속하게 계엄해제를 결의하였습니다. 결과는 다행이었지만 과정은 위험했습니다. 기장교회는 이제 다시 한번 주님의 엄중한 부르심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불의한 권력의 횡포에 눈 감지 않고 당당히 맞서 하나님의 음성을 증언해야 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만을 의지하고 민주주의의 완성과 정의와 평화의 촉진을 위해 나서야 할 역사의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다시 뜨겁게 기도합시다. 군부독재의 험난한 굴곡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고 기도로 호소하며, 행동으로 믿음을 고백한 기장의 신앙전통을 따라나섭시다. 우리, 주저하지 맙시다. 물러서지 맙시다. 십자가를 넘어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우리와 동행하시니 그 누구도 그 어떤 권력도 우리의 앞길을 막아설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교회답게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맡기신 권력을 사유화하고 자신이 권력의 주인이라고 오판하는 사람들을 꾸짖읍시다. 비상계엄을 발동하여 대한민국의 기초를 무너트리려 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더는 숭고한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도 자격도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합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며 행동하는 모든 기장교회 위에, 흑암이 깊은 땅에 빛으로 성탄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2024년 12월 8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박상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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